좋은 책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매기 앤드루스·제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0

어릴 때 읽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생리’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말하길 ‘어느 날 갑자기 신기하게도, 남성이 월경을 하고 여성은 하지 않게 되면 월경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자랑할 가치가 있는 남성들의 행사가 될 것. 남성들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자랑할 것이며, 소년들은 남성이 되었다는 상징인 초경을 종교 의식과 파티로 축하할 것이다. 의회는 매달 남자들이 불편한 일을 겪지 않도록 ‘국립 생리불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할 것이며, 위생 용품은 연방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무료가 될 것이다.’종교, 경제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생리’가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적나라하게 풀어낸 이 이야기가 이 책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를 읽으며 계속 상기되었다.

영국의 문화사학자 매기 앤드루스와 여성학자 재니스 로마스는 영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 책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를 썼다. 제목처럼 이 책은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거나, 여성들이 만들었거나 혹은 오늘날까지도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100가지 물건 혹은 상징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발달해온 과정을 기록하였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성사의 100가지 상징들은 여성의 몸, 사회적 역할의 변화, 기술의 진보, 미의식과 소통, 노동과 문화, 정치 등 총 여덟 가지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여성사의 전말을 담아내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이 남긴 풍부한 유산을 알 수 있고, 여성이 어떻게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순응하도록 조장되었으며, 그러한 압박감에 어떻게 맞서왔는지를 들려준다. 즉 이 책은 여성과 페미니즘의 역사에 관한 복잡하고 흥미로우며 중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그러나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첫 번째는 루시의 뼈다. 루시는 ‘인류의 할머니’라 일컬어지는 최초의 인류인데 루시 이래 수백만 년간 여성의 역사는 진화해왔지만, 그녀의 뼈가 그러하듯 불완전한 파편들로 흩어져 그 궤적을 좇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책의 첫 장으로 더 없이 적절해 보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임신과 출산을 상징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포르노그래피와 여성의 대상화를 이야기하는 ‘호텐토트의 비너스 엽서’ 등 첫 장의 12가지는 몸과 모성, 섹슈얼리티로서 여성의 경험을 미리 결정지어온 것들이며 이어 아내와 가정주부, 가사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해방을 주제로 한 과학과 기술 등을 거쳐 여덟 번 째 마지막 장은 ‘여성의 정치 - 그리고 살아남다’를 주제로 마지막 100번째는 훼손된 마거릿 대처 조각상이다. 저자들은 이를 통해 여성이 주인공인 ‘리더와 권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그 시각은 새롭고 세부적인 내용은 흥미진진하였으나 번역에 있어서는 몇 군데 오기와 몇 군데 어색한 부분이 아쉬웠고 책의 제목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가 “A HISTORY OF WOMEN IN 100 OBJECTS”라는 원제목을 옮긴 최선일까에 대해서도 약간의 아쉬움과 의문이 남았다.

이 숙 현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