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지음  박여명 옮김

인플루엔설,  2019

“모든 인간은 매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 있다.”이 책의 에필로그 바로 앞 장에 이런 문장이 있고, 나는 문장 전체에 밑줄과 같은 동그라미를 쳤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이란 바로 이러한 것일 터이다.  200쪽 남짓, 두껍지 않은 책인데 여러 날에 걸쳐 쉽지 않게 읽었다. 한두 번 정도 더 읽게 될 듯하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에 대해서 - ‘신의 모상으로 창조 되었기 때문이라는’ 종교의 가르침을 떠나서는 - 오랜 시간 인류가 서로 피 흘리며 마침내 도달한 어떤 선언, 참인 명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는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할 계기가 많았다. 그리고 삶의 질은 담보되지 않는데 의학의 발달이 생명연장으로만 이어지는 현실에 대해 막연히 성토하곤 했다.
그런데 독일의 신경생물학자 게랄트 휘터는 환경오염으로 꿀벌이 사라진 괴팅겐의 들판에서 “사람들은 왜, 품위 있는 존엄한 죽음은 말하면서도 그 이전에 존엄한 삶을 이야기하지는 않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의 뇌를 연구해온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하여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것이 이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이다. 즉 존엄이라고 하면 위의 나처럼 보통 헌법에 보장하는 천부인권, 철학적 주제를 생각하지만 저자에 의하면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존엄이란 인간이 타고난 본능이자 삶 속에서 다시 되살려야 할 감각이며, 서로에 대한 존중과 품위를 잃고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모멸의 시대, 진정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존엄이라는 삶의 원칙을 되살리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존엄의 정의를 자연과학적인 시각에서 조망”하고자 했으며 그에 의하면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진정으로 이해한 지식이나 깨달은 사실은 두뇌의 감정적인 영역을 활성화시켜 우리를 깨우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진정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타인의 존엄을 해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어서고 알아서 어미의 젖을 찾고 다음 날이면 어미와 함께 거닐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동물들보다 훨씬 가변적이어서 그러한 행동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동물과 달리 성장기 뇌의 발달 단계에서 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 새로운 경험들을 토대로 뉴런이 연결되고 회로 패턴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뇌는 사회적 뇌라 할 수 있으며 신념, 표상의 형성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되며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즉 존엄은 인간의 본능에 새겨진 것이며 “내면의 확신으로서 한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부여하며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든다”고 한다.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하는 인간은 현 시대에 평가의 대상과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런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교육의 문제이며 대책이 아니라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배우는 과정이 충분히 주어질 때, 인간의 두뇌는 일관성을 가지고 더 효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함으로써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고 존엄을 통해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저자 게랄트 휘터는 1951년 동독에서 태어났으며, 불안과 우울, 잠재력 등에 관한 뛰어난 뇌과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전달하는 독일의 신경생물학자이다.

이 숙 현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