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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00년을 향해 (14)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한민국 법률구조의 역사 상담소는 지난 2016년을 창립 60주년의 해로 보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구조 기관으로써 자부심을 가지고 백년을 향해 나아간다는 전망을 세운 바 있다. 이러한 전망의 토대로 삼고자 상담소의 역사를 바로 알고 널리 알리기 위해 상담소의 연대기를 연재한다. 상담소는 지난 2009년 「번민하는 이웃과 함께 – 한국가정법률상담소 50년사」를 펴낸 바 있으며, 이 연재는 이를 기초자료로 하였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예방사업 무료결혼식 (3)

1977년  10월   무료결혼식 시작


상담소의 무료결혼식은 다양한 방면에서 자원봉사를 이끌어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상담소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이 뜻깊은 결혼식을 주관할 주례를 섭외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정일형 박사가 다른 결혼식의 주례를 거절하면서까지 상담소 무료결혼식의 주례를 전담하였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어려워지면서 1979년 4월부터는 상담소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던 김영운 목사가 그해 말까지 전담을 해주었다. 하지만 연말부터 무료결혼식 신청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 두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러던 차에 1980년 1월, 당시 기독교 대한감리회 선교국에서 선교활동을 펴고 있던 미국인 타이즈 목사와 장병호 목사가 상담소와 외국과의 영문 서신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깊은 감명을 받아 감리교 목사들의 모임에서 주례 희망자들을 모집하였다. 이후부터 장 목사는 목사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무료결혼식의 예정일에 틈이 나는 목사들을 월별 또는 주별로 배정하여 상담소에 연락을 해 주었고 상담소는 시간을 내주겠는 목사에게 확인 겸 정식으로 부탁하는 전화를 하는, 말하자면 주례 자원봉사단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처럼 상담소의 무료결혼식에서는 주례를 비롯하여 준비 과정 전체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눈부신 활약을 보여 주었다. 식장에서는 신랑 신부의 대부분이 결혼식에 몸 만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 회원들이 예복, 기념품, 사진촬영, 머리 손질과 화장 등 신부의 단장은 물론이고 피아노 반주와 축가에 이르기까지 유무형의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여 도와준 것은 ‘이싹회’였다. 이싹회는 이화여대부속유치원 자모회로 이들은 매주 토요일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새벽같이 꽃시장에 들러 싱싱한 생화로 신부 부케, 신랑 꽃뿐만 아니라 식장 장식을 도맡아 해 주었다. 그 밖에도 웨딩드레스를 수 십 벌 모아 기증해 주는 등 무료결혼식을 위한 이들의 노력과 정성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 밖에도 태평양화장품은 신부화장을, 전순영 회원은 신부에게 드레스 입히기를 그리고 예림미용학원에서 머리손질을 맡아 주었으며, 박영숙 회원과 이영숙 회원 등은 축가와 반주를 맡아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봉사해 주었다.
이와 같이 주례부터 반주, 축가, 사회, 꽃 장식, 신부화장, 사진촬영 등을 자원봉사 하는 회원이건 또 알게 모르게 기금과 축의금과 선물을 내놓는 회원이건 간에 번민하는 이웃을 돕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뜻깊은 사업을 펴나가는 상담소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면서, 1980년 3월부터는 무료결혼식 신청이 계속 몰려와 거의 매주 결혼식이 진행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상담소가 처음으로 시도해 자리를 잡은 무료결혼식은 이후 각 구청이나 단체 등에서 이를 본받아 널리 확산되었으며, 2000년 6월 429번째의 무료결혼식을 마지막으로 그 역할을 다할 때까지 우리 사회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여 고통 받았던 많은 부부들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가정문제를 예방하는 사업으로써 그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편집부